20150911_쉬고싶다

어려서부터 내게 가족이란 행복이 아니었다. 기댈 곳도 쉴 곳도 아니었다.

모든 가족이 '아이들은 뛰어놀고 엄마아빠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TV 속의 한 장면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먹고 살겠다고 바깥에서 타인들과 치열하게 부대끼고 난 이후에 쉴 수 있는 그런 안식처가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방금 치루고 온 1차전만큼이나 쉽지 않은 2차전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무도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날이 많았다.

특히나 공감능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과 같은 집에서 산다는 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면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하는 날이면 돌아오는 건 비난이나 저주 같은 말들 뿐이었다. 나는 항상 밖으로 돌아야했다. 

잠깐 예전에 썼던 글을 찾아봤다. 13년 12월.. 약 2년 전쯤 글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


하지만 그는...

현재가 지나가면 과거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법이니까 현재에 집중하면 된다고 말하던 중학생이던 나를..

대학생 시절 노회찬 전 의원의 인터뷰집을 보고 있던 나를 빨갱이새끼라 불렀다..

군복무시절 휴가를 나와 집에서 투자편람을 끙끙거리며 읽던 나를 도둑놈이라 불렀고..

말대답을 했다며 나를 망나니 같은 새끼라 불렀다..

어젯밤 나는 미친새끼였으며

자기를 키워준 사람을 결국에는 죽이고마는 김정은 같은 자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여전히 아버지라 부른다.


그 이후 적지 않은 업데이트가 있었다.

일요일 새벽부터 출근해서 저녁 늦게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양아치 새끼 같은 모자를 쓴' 사람이었고..

집을 나온 당일 아침.. 모든 직원들 앞에서 나는 '머저리 새끼'가 되었으며..

일주일 후에 찾아간 집에서 그에게 들었던 첫 번째 말은

'네가 한 행동이 회사업무에 얼마나 많은 차질을 주는지 알고 있냐' 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이 서른에 사춘기때도 안 해본 가출을 했겠냐고 하는 나의 말에 그는 웃었고,

다시는 발 들일 생각하지 말라는 그 집을 나올 때 등 뒤에서 들려왔던 말은 '저게 인간이야' 였다.

오늘 저녁에는 그가 나를 어디다 숨겨놨냐며 엄마를 들볶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 마음이. 무겁다. 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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